작품명: 화담재(花壜齋)

설계자: (주)건축사사무소 서가 오승현

화담재(花壜齋)는 면목동의 오래된 시장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를 처음 찾아가던 날, 시장길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고, 여러 음식 냄새들이 코를 자극했다. 또한 여러 상점들이 도로 양측으로 늘어서 있다보니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골목길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장길 바로 옆에 새로운 다가구주택이 들어서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고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대지 방문 때의 경험을 정리하고 몇가지 방향을 정하여 계획을 진행했다. 오래된 시장길의 번잡함과 다양한 유동인구, 정리되지 않은 거리의 풍경과 주거 환경에서 보다 단정하고 단단한 표정의 건축물로 자리잡기를 바랬다. 건축물의 볼륨을 정하고 재료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준을 유지하며, 구축되어진 결과물은 보다 중성적인 표정으로 거리와 마주하고자 했다. 대지는 일반주거지역으로 일조에 의한 높이제한이 적용되는 곳이다.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대지의 형상은 일조에 의한 높이 제한에서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다. 이에 일조 제한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각층의 층고를 조절하고, 마지막 층에서는 북측 방향으로 외부 테라스를 길게 조성했다. 1층은 도로에 면한 서측에 피로티 형식의 소규모 주차장을 계획하고, 안으로는 작은 근린생활시설을 계획했다. 골목길 내 피로티 주차장들이 대부분 음습하거나 버려진 공간처럼 남겨져 있으나 보다, 화담재는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마감을 적용하여 정돈된 공간으로 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주차장 계획으로 인해 대지 깊숙이 들어가 근린생활시설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너른 데크와 조경으로 꾸며진 후정을 계획하여, 거리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진 비밀스러운 공간이 마련됐다. 상층부는 1.5룸, 2룸, 건축주 세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인 세대의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1.5룸은 낮 시간대에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전면 도로측에 배치했다. 상주하는 가족 구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2룸은 1.5룸 뒤켠인 도로 반대측의 조용한 공간으로 배치했다. 1.5룸은 해당층의 위치에 따라 내부 평면이 다르게 구성되어 사용자로 하여금 본인의 생활 방식과 어울리는 곳을 선택 가능하게 되어 있다. 건축주 세대는 중년의 부부와 대학생인 딸로 가족이 구성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딸의 침실을 제외하고 별도의 침실이 필요하지 않다는 요구사항을 받고 설계를 진행했다. 중년의 부부는 거실이나 다락과 같이 오픈된 공간을 침실로 사용하고 싶어했다. 이에 건축주 세대는 3개층에 이른 복층형의 구조로 계획했다. 부모님과 독립된 자신만의 공간을 원한 딸의 침실은 3층, 용마산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거실과 주방/식당은 4층, 그 위에는 남편의 놀이터이자 서재인 다락을 계획했다. 장방형의 거실과 주방/식당에 면해서는 일조 제한에 의해 만들어진 장방형의 외부 테라스를 조성하고, 주변의 시선을 거러주기 위해 조경을 둘렀다. 이러한 실별 배치를 통해 거실이나 식당에 앉아 남측으로는 용마산의 원경을, 북측으로는 테라스와 조경의 근경을 동시에 가지게 됐다. 외부의 마감재 선택은 상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대지 주변의 혼돈에 기인하며, 그 구축방식이나 색상의 선택에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러 요소들이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동네의 풍경 가운데 배경으로 건축이 되기를 바랬으며, 이에 정리된 수직, 수평의 볼륨과 무채색의 마감재를 전체를 구성했다. 형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물성이나 색감이 유사한 노출 콘크리트, 콘크리트 벽돌, 홈벽돌을 적용하여 단조로우면서 지루하지 않은 표정을 갖도록 했다. ‘화담재’는 꽃을 담는 항아리라는 뜻으로 건축주가 건물을 짓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물명이다. 대지의 불리한 조건과 갖은 악성 민원 가운데서도 건축주의 굳은 의지로 건축물은 무사히 완성되었고, 지금은 좋은 세입자들과 함께 머무르며 살아가기 좋은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이든 건축물이든 때론 그 이름을 따라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